최종편집일시:2022.12.02 (금요일)  로그인 | 회원가입
주간날씨 전체기사 전국뉴스 지역뉴스 동정 생활정보 글로벌 .사회 .종합 종교 교육 스포츠·연예·문화.예술 특집.칼럼 식품.보건
스포츠e스포츠TV/연예예술/문화종합
 
전체보기
스포츠
e스포츠
TV/연예
예술/문화
종합
뉴스 홈 스포츠·연예·문화.예술  기사목록
 
서울대학교법과대학 출신 김원철
인생 이력서
기사입력 2022-04-17 오후 11:03:00 | 최종수정 2022-08-10 오후 11:03:23   




(김 원 철 안동신업경제연구회 회장)

인생 이력서를 왜 써야 하나? 라고  곰곰이 생각하니 다음세상에 갈 때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 !

이승에서의 나의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 한다면 “역마살” 이다. 그래도 싫지않다.  아니 다음세상에도 전용트레이드 마크로 가져가고 싶다.

1.출생과 유년시절

나는 6.25 사변 3년전 1947년에 서울 성북동에서 태어났다. 부친(김구직, 1921.12.25-2014.3.25 )은 유학전통의 보수적 안동사회에서는 일찍이 일본유학도 하신 선구적인 개화지식인으로 서예는 물론 문학, 사진 등 다양한 취미를 즐기신 어른이셨다. 우리는 3형제로 원길 형님은 영문학을 전공하여 시인으로 현재 지례창작예술촌과 안동노인대학을 운영하고 있고, 아우 원창은 서울농대 출신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이야기를 다시 돌려서 서울에서 600년 향리인 경상도 안동에서도 32km 떨어진 산골마을 “지례”라는 마을로 피난길에 오른 세살박이 어린애는 달구지에 실린 채로 하루 종일 울며 보챗단다. 아마 훗날 노래신명이 그때 함양 되었나보다.
지례마을은 조선조 숙종 때 우암과 예송논쟁을 벌렸던 芝村 金邦杰(지촌 김방걸) (1623~1605) 선조께서 터잡은 마을로 현재 종손자까지 15대를 한집에서 살아왔다.

초등학교는 4번을 옮겨 다녔는데, 문명이라고는 하늘에 지나다니는 비행기 밖에 보이지 않는 첩첩산중 지례 길산국민학교에서 1학년, 내앞국민학교에서 2학년, 그후 자동차와 기차를 볼 수 있었던 대구 종로국민학교를 3년 다니다가 다시 안동사범학교부속 국민학교로 전학하여 졸업하였는데 유년시절부터 이미 역마살이 있었는가보다. 

대구에서 초등학교 3년 때부터 기계체조에 호기심을 가져 중학교 졸업 할 때까지 운동선수로 공부는 뒷전이고 눈만 뜨면 해질 때까지 운동장에서 살았다.
또 졸업전 수학여행을 갔는데 경주에서 탄 기차에서 잠이 들어 안동에서 내리지 못하고 제천까지 가서야 보안원의 손에 이끌려 다음날 새벽에 안동에 온 적도 있었다.

2.중고등학창시절

중학교시절은 철없는 시절로 공부는 안중에도 없었고  하루종일 운동장에서 뒹굴다가 3학년이 되어서야 남들은 대구로 진학한다니 시샘도 나고, 장래를 생각하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너무 늦었지요. 하여간 경북고 시험을 쳤는데 그때는 입학시험이 국가고시라 동점으로 떨어지고 시험성적표를 받아서 2차 안동고에 입학했는데 수석이라! 국민학교 중학교 한번도 우등상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내가 수석입학이라 !

안동고 반년을 다니고 여름방학을 맞아 아무도 모르게 지례산골로 잠적하였다.
6개월 동안 잠은 5시간,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외는 책상앞에서 씨름한 결과 안동에서 혼자 경기고에 합격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역마살이 방랑객으로 발전하였나 보다. 여름방학이 되면 세상 구경이 하고 싶어서 책은 기차역 소화물로 부치고 작업복에 배낭 걸머지고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 가서 속초로 남해로 변산반도로 무전여행을 다녔다.
여름방학 절반은 동해안, 남해안, 서해안에서 보냈다. 인생 구경, 세상 구경 하기 위해서다.

고3때는 오전수업하고 하숙집에 오면 바로 자야하는데 대낮에 잠이 오지않으니 영화관, 빵집, 심지어는 막걸리나 소주집 까지 들르면서 긴장을 풀고 저녁밥 먹으면 바로 잔다.

12시 되면 일어나서 김상현, 문상목과 함께 혜화동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새벽 6시까지 꼬박 날을 세다가 학교 간다. 남들이 보면 매일 노는 학생이다.
그러나 셋이 나란히 법대를 합격 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때부터 사회참여로 학생데모도 열성적으로 하게 되었다.


3.법대시절

방랑벽은 서울법대에 들어와서도 계속되고 이제는 해안이 아니라 왠만한 여객선이 다니는 섬, 거제도, 제주도, 울릉도, 심지어는 50톤짜리 목선에 기관포만 있는 경비정을 울릉경찰서에 찾아가서 얻어타고 독도까지 유랑하는가 하면, 3학년이 되어서는 대의원, 의장이 되어 학생운동의 선두에 참여하다가결국 동대문경찰서에 끌려가서 3일간 얻어터지고  빨갱이로 몰려 제적요구를 받았으나 박병호 지도교수님께서 적극 변호하시고, 이 한기 학장님께서 경찰청의 요구를 거부하여 제적을 면하였다. 두 분 은사님의 덕은 지금까지도 내가슴에서 떠나질 않고 방울방울 매달려 있다. 또한 3학년 가을 여행을 간호학과 여학생들과 같이 설악산에 다녀온 것도 잊지못할 추억임에 틀림없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지만 다들 열심히 고시공부를 하느라 바빠서 여유 있는 대화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러나 나는 학창시절 7년동안 하숙, 자취 입주 가정교사를 번갈아 했지만 김만복과는 자취를 성북동에서 같이 한 적이 있어서 지금까지 각별하게 지내고 있다. 오랜 훗날의 이야기 지만 최종고는 고향 상주에 내려온 길에 안동까지 놀러 와서 함께 수몰전의 냇가애서 골뱅이도 잡고 함께 놀았다. 그후에도 몇 번 내려왔고, 그 외 유명건, 양건, 한부환, 서재현, 오병선, 박노문 등 일법회(一法會) 동기도 방문하기도 하였고, 한번은 우리 법대동기회에서 안동으로 내려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4.사회생활 초년시절

졸업후 정치판에 기웃거리다 조영래 선배가 국민회의 사건으로 투옥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고 1972년 첫 직장을 농협중앙회에 근무하게 되었다.

농협은 그때만 해도 일제가 남겨준 농민수탈의 악습을 완전히 벗어 버리지 못하고 또한 집권자의 표몰이 기관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어서 결국은 적수공권으로 사업길에 뛰어 들었다. 율산실업을 창업하고도 아무런 수입이 없어 견디지 못하여 할 수 없이 불란서 엥도스웨즈은행으로 옮겨 파리본점 연수겸 불란서 유학까지 가게 되었다. 파리에서는 대사관에 있던 엄근섭의 도움으로 불어에 전뱅이었던 나를 아파트까지 얻게 해주었다.
 
이나마 운명의 파도에 휩쓸려 난파선이 된 채 6개월만에 귀국하여 전자부품 반도체 제조회사를 경영(1976년), 한때 독점적 사업으로 성장일로를 걸었다. 이 시절 박민환은 이웃사무실에서 사업을 시작했으므로 사업동기가 되었다. 그러나 본인의 전공분야가 아닌 사업의 경영한계에 봉착하여 부도를 내고 투옥되어(1981년) 40일간의 미결수생활 끝에 동기들의 도움으로 보석으로 풀려나게 되었다.  그후 3년간의 실업자 생활 끝에 1984년 풍산금속 기획실차장으로 임명되어 1년만에 부장, 1년반만에 이사로 승진, 온산 제2공장 준공과 안강 노사분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섰다.

5.사회생활 중년시절

이제 또다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역마살이 도져서 풍산금속을 사퇴하고 1991년 민주당에 입당, 안동지구당 위원장이 되어 총선에 도전하려고 동분서주 하였으나 집권당(민정당)이 집안친척을 내세우는 바람에 좌절되고 말았다.

실업자를 탈피하려고 어쩔 수 없이 내가 창업기획한 율산의 후신인 서울종합터미널(호남선)개발에 참여하여 1993년 센트럴시티를 착공하여 2000년에 준공하고 메리어트 호텔을 경영하였다. 그후 건설회사 고문으로 수년을 지내다 2003년에 안동으로 낙향하여 정치판에 어울렸지만 세월만 보내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한때는 건설관련 회사의 고문으로서 아프리카 콩고로 가서헤매기도 하고,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에서 경영자문역을 맡기도 하는가 하면, 또 다른 한때는 한나라당 국책연구소인 한국위기관리연구소 고문역할을 맡은 적도 있다(2012년 전후). 수상경력으로는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인물대상(2017년)을 받은 바 있다.

6.노년에 들어서서

나이 70이 넘어서니 방랑벽이 없어지려나? 생활반경을 줄여 보았다. 우선 서울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시절의 인연들을 중심으로 한 활동을 줄이고 고향인 안동을 중심으로 한 활동에 국한하여 생활을 단순하게 하고 건강을 위하여 한 달에 두 차례 등산과  또한, 2011년부터 오미자농원을 운영하면서 네차례 이상 밭에서 일하는 생활로 정리해 왔다. 
 
현재 직함은 안동지역 산업경제연구회 회장으로 되어 있고 고향의 발전을 위해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원길 형님이 운영하시는 지례예술촌에도 가끔 들려 전국에서 오는 내방객들도 만나 담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미지의 세계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곳에 투신하고 싶은 열정은 아직도 식지 않고 앞으로 10년쯤은 불태울 수 있을 것 같다.
 
집안에 틀어박혀 지낼 내가 아니다. 평생의 방랑끼를 발산할 요랑으로 2020년 2월 27일부터 5월 20일 까지 거의 매일 안동의 북으로는 영남산을 기본으로 학가산, 천등산, 와룡산, 왕모산, 동쪽으로는 약산, 아기산, 천지갑산 남으로는 갈라산,서쪽으로는 검무산 뿐만아니라 이웃지방에 있는 예천의 저수령, 촛대봉, 영주의 봉수산, 소백산, 죽령옛길, 문경의 조령산, 대야산, 괴산의 산막이 옛길 등잔봉, 의성의 금성산, 비봉산,청송의 주왕산, 봉화의 청량산, 영양의 구주령, 영덕의 축산 후포뒷산 등을 오르내리며 지냈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안동인근 산이란 산은 하루도 빠짐없이 오름으로써 체력을 유지하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기사제공 : 대구경북신문
 
 
 
 
 
 
 
‘삼태사와 병산전투’개막
95세 'MC 송해‘ 건강 문제로 입원
 기사목록 보기
 
  스포츠·연예·문화.예술 주요기사
기명화 창시자 토사 박승기 선생 기명화 그림 시..
이병국 작가=경북예총회장 개인전
진성 가수 '안동역에서'노래비 제막식
국제장애인문화교류 대구광역시협회 창립1주년 기..
이효정 가수 딸과 함께 만든 곡 감동
가수 최예라"팔자타령"인기부상
안동공예문화전시관, 정태호 대상.이미경 금상
봉화군청 공무원가족 한마음체육대회 개최
 
 
주간 인기뉴스
‘내방가사’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내방가사’유네스코 세계기록..
영덕군, 내년 예산안 5,972억원 ..
안동시의회 권기익 의장 ,의정대..
경북북부제1교도소 , 기부금 전..
농협 안동시지부, 사랑의 김장김..
 
인기 포토뉴스
[벼꽃 피다 !]
안동제비원전통식품 최명희 대..
서울대학교법과대학 출신 김..
<대구경북 인물인터뷰>Q
 
회사소개 광고안내 이용약관 개인보호취급방침 이메일수집거부 기사제보 독자투고 구독신청
 
최초등록셜립일:2003.11.27 대구경북신문 변경등록 경북,아 00565 (인터넷신문) 2019.12.09. tknews.co,kr
발행·편집인 : 이 춘 기 / 청소년보호책임자: 이 춘 기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제비원로113-3(당북동333-127)
우편물총괄접수 :경북 안동우체국 사서함 187호
대표전화 010-3707-8227 / 기사제보 :kyungbuknews@korea.com 대구경북신문 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에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률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Copyright(c)2022 대구경북신문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Copyright(c)2022 대구경북신문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